나이트 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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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나이트 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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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해!"
하마터면 자동차가 비탈길로 미끌릴뻔했다.
꼬불꼬불하고 군데군데 파여진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달리면서도 운전에 집중하지 않고 자꾸 딴짓을 하는 남자를 보며 여자는 가끔씩 발작처럼 소리쳤다.

오랜만에 아이들도 맡기고 둘만의 오붓한 드라이브를 한다는 생각에 들떠 흥분된 마음으로 도로를 달렸다. 두 남녀를  태운 자동차는 쨍쨍한 햇살과 녹색으로 우거진 삼나무들의 경호를 받으며 산들바람 속으로 파고들었다.

펜션에서 먹기위해 준비한 도시락과 출발하면서부터 찔끔찔끔 마시다보니 반병 밖에 안 남은 레드와인, 그리고 읽을거라는 확신은 없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들고온 책 한권이 뒷 자리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남자는 여자의 허벅지에 손을 올렸다. 욕망이 휘발된 스킨쉽. 당신은 아직 성적으로 매력이 (있을수)있다고 위로하는 터치. 여자는 남자의 손을 슬쩍 밀치고 말려올라간 원피스의 끝자락을 밑으로 끌어내렸다. 여자도 기꺼이 남자의 장난에 장단을 맞춘다는 느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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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이네."
거의 10미터의 비탈면을 구르고 떨어진, 한때는 자동차였던 고철 더미를 훑어보며 경찰관이 무심하게 말했다.

"119가 조금 늦게 도착한것 같습니다. "

"글쎄, 119가 일찍 왔다고 달라질게 있었을까?"

구겨진 자동차 안을 살피던 후배 경찰관이 물건 하나를 들고 걸어왔다.

"이것 좀 보세요. 뒷자리에 이 책이 있네요. 영국작가 세라 워터스의 <나이트 워치>. 세라 워터스는 영화로도 제작된 <핑거 스미스>를 쓴 작가거든요.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 보셨어요? 이<아가씨>의 원작이 <핑거 스미스> 랍니다. 이 책  <나이트 워치>는 시간의 역순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구요, 플롯보다는 능란하게 엮어가는 문장의 힘이 묵직하게 다가오더군요. 저도 이 책을 가지고 있거든요. 혹시 관심있으시면 빌려드릴 수 있습니다."

래퍼처럼 퍼부어대는 후배의 책 이야기를 흘려듣던 경찰관은 주변을 한번 훑어보며 대답했다.

"야, 그거 다시 차안에 넣어놔. 정리하고 돌아가자."

선배 경찰관은 의심스런 물건을 생각없이 갖고노는 어린아이에게 야단치듯이 소리쳤다.

"어, 이거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네..."
후배는 도서관 인장이 찍힌 영원히 반납이 안될지도 모를 책을 원래 있던 자리로 돌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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